핵심 요약 반도체 부품 제조사의 기술유출 형사사건 항소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5. 15. 선고 2025노3463 판결)은 반출 자료 가운데 열처리 레시피 파일 등은 영업비밀로 인정하면서도, 전 직원이 그룹웨어에서 열람·인쇄할 수 있었고 비밀표시가 없던 일일생산현황 자료는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보아 그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그 자료로 경쟁사가 공정관리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으므로, 유무죄를 가른 것은 비밀관리성 요건(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이었습니다. 전 직원에게 포괄적으로 비밀유지의무를 지운 사정만으로는 비밀로 관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시이고, 형이 징역 2년 6월에서 2년 4월로 바뀐 것도 유죄로 인정된 범위가 줄어든 데 따른 것입니다. 이 판결은 상고심(대법원 2026도8798)이 계속 중인 미확정 판결입니다.
직원이 퇴사 직전에 회사 자료를 내려받아 경쟁사로 옮긴 정황을 확인하면, 회사는 대개 그 자료 전부를 영업비밀이라고 전제하고 형사 대응을 준비합니다. 입사할 때 비밀유지서약서를 받아 두었고 취업규칙에도 비밀유지 조항이 있으니 요건은 갖춰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정에서 반출 자료는 한 묶음으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2026년 5월에 선고된 반도체 부품(캐필러리) 제조사의 기술유출 사건 항소심은, 같은 피고인이 같은 시기에 반출한 자료들 사이에서 영업비밀로 인정되는 것과 탈락하는 것을 갈라 보여주었습니다.
기준은 판결문 안에 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나 법무·보안 담당자가 이 판결에서 가져갈 것은, 우리 회사 자료 중 어떤 것이 법정에서 영업비밀로 인정받고 어떤 것이 탈락하는가의 기준입니다.
항소심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1. 13. 선고 2025고단2662 판결)은 중국 경쟁사로 이직한 피고인에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상배임을 인정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5. 15. 선고 2025노3463 판결)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 4월을 선고하면서, 공소사실 중 범죄일람표 연번 3, 4 기재 영업비밀 취득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언론은 이 결과를 감형으로 전했지만, 판결문의 구조는 다릅니다. 항소심은 피고인의 사실오인·법리오해 주장이 위 무죄 부분에 관하여 이유 있다고 보아, 피고인과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다시 형을 정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실질은 일부 무죄입니다. 따라서 형이 두 달 줄어든 것은 초범이라거나 반성했다는 정상참작의 결과가 아니라, 유죄로 인정된 범위 자체가 줄어든 데 따른 결과로 읽어야 합니다.
한 가지를 먼저 밝혀 두어야 합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상고가 제기되어 사건이 대법원 2026도8798로 계속 중이고, 2026년 9월 18일 현재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항소심 판단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상고심에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치 있는 자료인데 왜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했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정보로 정의합니다.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 세 요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그 정보는 영업비밀이 아니게 됩니다.
무죄가 난 자료는 일일생산현황 자료였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일생산현황 자료(증거순번 40, 41)를 통하여 경쟁사 입장에서는 피해회사의 공정관리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 레시피 파일을 포함하여 별지 연번 1, 2, 5 자료의 경우 접근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었던 데 반해, 일일생산현황 자료는 단순 노무자를 제외한 피해회사 직원 모두가 그룹웨어 상에서 열람, 인쇄 등이 가능한 상태로 관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별도로 비밀표시가 되어 있었다고 볼 자료도 없다."
주목할 점은 순서입니다. 법원은 경쟁사가 이 자료로 공정관리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즉 경제적 유용성을 먼저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전 직원이 열람·인쇄할 수 있었고 비밀표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영업비밀성을 부정했습니다. 회사에 가치 있는 자료라는 사정과 법이 보호하는 영업비밀이라는 지위는 별개이고, 그 사이를 잇는 것이 비밀관리성이라는 뜻입니다.
이 요건은 오히려 완화되어 온 요건입니다. 종전에는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정보만 영업비밀이었고, 2015년 개정으로 "합리적인 노력"으로, 2019년 7월 시행 개정으로 지금의 "비밀로 관리된"으로 문턱이 낮아졌습니다.
그 완화된 현행 요건 아래에서도 이 자료는 탈락했습니다. 요건이 낮아졌다고 관리 없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 판결로 확인된 셈입니다.
같은 사건 안에서 왜 자료마다 결론이 갈렸나
유죄가 유지된 쪽의 중심은 열처리 공정 레시피 파일입니다. 항소심은 이 파일을 특정한 조도값, 즉 거칠기를 구현하기 위해 어떠한 온도와 시간 조건에서 열처리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로서, 피해회사가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여 도출한 캐필러리 생산의 핵심 정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파일을 포함한 연번 1, 2, 5 자료는 접근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고, 법원은 이 자료들의 영업비밀성을 인정했습니다.
같은 피고인이 같은 무렵 반출한 자료인데도 접근 통제가 있던 자료는 영업비밀로 인정되고, 전 직원에게 열려 있던 자료는 탈락했습니다. 사내 자료라고 하여 일괄로 영업비밀이 되지는 않고, 자료 하나하나가 반출 당시 어떻게 관리되고 있었는지에 따라 각각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피고인이 퇴사한 뒤 재직 중인 동료들에게 연락해 자료를 받아낸 부분도 영업비밀 취득행위로 유죄가 인정되었습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 제1호 가목). 유출 경로가 재직 중 반출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여기서 확인됩니다.
서약서와 취업규칙을 갖춰 두었는데 왜 부족한가
이 회사도 보안 조치는 갖추고 있었습니다. 기록에는 비밀준수계약서, 비밀유지 서약서, 구성원 윤리강령 준수 서약, 취업규칙, 보안점검 공지, 해외 공장 보안프로그램 안내, 그룹웨어 문서 열람 이력 같은 자료가 증거로 제출되어 있고, 회사 보안정책상 자료반출 인가 없이는 USB 복사가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피해회사가 직원들에게 비밀유지의무를 포괄적·추상적으로 부여하였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피해회사가 이 부분 자료를 비밀로 관리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전 직원에게 서약서를 받는 방식의 포괄적 의무 부여는 회사 전체에 적용되는 조치일 뿐, 특정 자료를 비밀로 관리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법원이 확인한 것은 그 자료에 대한 접근 제한과 비밀표시, 즉 자료 단위의 관리였습니다.
그룹웨어 열람 이력은 회사 편인가
증거 구조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반출에 쓰인 USB와 피고인이 중국에서 쓰던 휴대폰이 국내에 없어 포렌식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은 2025년 3월경 퇴직한 뒤 5월 6일 그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은 채 입국했다가 5월 9일 긴급체포되었고, 유죄 인정은 USB를 실행해 본 동료 증인의 진술, 위챗 대화내역, 그룹웨어 문서 열람 이력, 비밀준수계약서 같은 증거에 의존했습니다. 회사가 평소에 남겨 두는 로그가 형사 입증의 축이 된 것입니다.
다만 같은 로그는 반대로도 작동했습니다. 그룹웨어 기록은 피고인의 열람 사실을 입증하는 동시에, 문제 된 자료를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접근 기록을 남기는 것과 접근 범위를 좁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만 갖춘 회사는 입증 자료가 비밀관리성을 깨는 자료로 쓰이는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양형이유에는 사후 대응의 기록도 남았습니다. 법원은 피고인과 동료들이 서로 연락해 메시지와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했고, 피고인이 범행을 축소하는 거짓 진술을 하다가 객관적 증거가 제시되면 그 부분만 인정했다는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들었습니다. 우연한 사정으로 유출 정황이 파악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영업비밀이 유출되었을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시입니다.
이 사건에 적용된 법정형은 어떻게 되나
영업비밀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 유출·취득한 행위에 대한 법정형은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이고(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 국내 사용 목적이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입니다(같은 조 제2항). 두 조항 모두 하한이 없어서, 법원은 이 범위 안에서 형을 정합니다.
하한이 있는 법도 있습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36조 제1항은 국가핵심기술의 국외유출에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정하고 65억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합니다.
다만 이 사건의 기술은 국가핵심기술이 아니어서 그 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피해회사는 사건 발생 후인 2025년 5월 29일에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으로부터 해당 기술을 첨단기술로 인정받았습니다. 법원은 유출 당시에도 첨단기술에 준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보아 이를 양형에서 고려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지금 무엇을 점검해야 하나
이 판결에서 나온 기준을 점검 항목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자료의 목록을 만들고 등급을 나눕니다. 법원은 자료 하나하나의 관리 상태를 따로 봅니다.
- 등급에 따라 접근 권한을 좁힙니다. 이 사건에서 인정과 탈락을 가른 첫째 기준은 접근 인원의 범위였습니다.
- 문서에 비밀표시를 합니다. 법원은 비밀표시가 없다는 점을 탈락 사유에 나란히 적었습니다.
- 서약서에는 포괄 조항에 더해 핵심 자료군을 특정하는 문구를 넣습니다. 포괄적·추상적 의무 부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 판결의 판시입니다.
- 그룹웨어와 문서관리시스템의 열람·인쇄·다운로드 로그를 보존합니다. 이 사건에서 포렌식 공백을 메운 것이 회사의 평소 기록이었습니다.
- 퇴직 절차에 자료 반환·삭제 확인을 넣습니다. 삭제나 반환 요구를 받고도 계속 보유하는 행위는 별도의 처벌 대상입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1항 제1호 다목).
덧붙이면 퇴사자가 반출한 파일에 고객 개인정보가 섞여 있는 경우, 회사는 영업비밀 침해를 다투는 지위와 별개로 정보주체에 대한 통지 의무를 지는 지위에 서게 됩니다. 그 구조는 퇴사자가 고객 데이터를 가지고 나갔을 때 회사가 동시에 지는 지위에서 정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비밀유지서약서를 전 직원에게 받아 두면 영업비밀 관리로 충분한가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5. 15. 선고 2025노3463 판결은 비밀준수계약서, 서약서, 취업규칙 등을 갖춘 회사에 대해서도, 직원들에게 비밀유지의무를 포괄적·추상적으로 부여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해당 자료를 비밀로 관리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법원은 회사 전체의 보안 체계보다 그 자료 단위의 접근 제한과 비밀표시를 보았습니다.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는 자료는 항상 영업비밀이 안 되나요?
이 판결이 그렇게까지 말한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같은 사건 안에서 접근 인원이 제한된 자료와 전 직원이 열람·인쇄할 수 있던 자료를 대비해, 후자에 비밀표시도 없었다는 점까지 더하여 비밀관리성을 부정했습니다. 접근 범위가 넓더라도 다른 관리 사정이 있으면 결론이 달라질 여지가 있으므로,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됩니다.
이 판결은 확정된 판결인가요?
아닙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가 제기되어 사건이 대법원 2026도8798로 계속 중이고, 2026년 9월 18일 현재 대법원 판결은 선고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의 내용은 항소심 판단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상고심에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1. 13. 선고 2025고단2662 판결(1심)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5. 15. 선고 2025노3463 판결(항소심). 상고심은 대법원 2026도8798로 계속 중이며 2026년 9월 18일 현재 미확정입니다
-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21065호) 제2조 제2호, 제18조 제1항·제2항. 제2조 제2호의 문언은 2015년 1월 개정(법률 제13081호)과 2019년 1월 개정(법률 제16204호, 2019년 7월 9일 시행)을 거쳐 현재의 "비밀로 관리된"이 되었습니다
-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21154호) 제36조 제1항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 사안은 개별 검토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