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에게 공공기관은 이상하게 먼 시장이었습니다. 기술 시연까지는 반응이 좋다가도 계약 단계에서 멈추는 일이 반복됩니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도입 실적이 없는 신기술을 샀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구매를 결정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여겨 왔기 때문입니다. “검증된 것만 산다"는 공공조달의 관성은 개별 담당자의 합리적인 자기방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21일, 이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한 법이 시행됐습니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 개정법(법률 제21311호)과 개정 시행령(대통령령 제36506호)입니다. 올해 1월 22일 시행된 AI기본법 본체가 ‘규제와 진흥의 골격’이었다면, 이번 7월 21일 시행분은 그중 진흥 쪽 조항들을 본격 가동하는 내용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① — 국가기관의 AI 우선구매 ‘고려 의무’

AI기본법 제16조(인공지능기술 도입ㆍ활용 시책 등)

③ 국가기관등은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용역을 발주하려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인공지능제품 또는 인공지능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다만, 업무 특성상 인공지능기술의 활용이 적합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여기서 “국가기관등"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등을 말합니다(법 제2조 제4호 자목). 즉 중앙부처부터 시·군·구, 각종 공단·공사까지, 이들이 제품·서비스를 사거나 용역을 발주할 때 AI 제품·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습니다.

주의할 점부터 짚으면, 이것은 “AI 제품을 사야 한다"는 구매 의무가 아니라 우선 ‘고려’ 의무입니다. 그래도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AI 도입은 담당자가 나서서 정당화해야 하는 예외적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AI 제품을 고려하지 않은 쪽이 설명이 필요한 구조가 됐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② — 구매 담당자의 면책

실무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같은 조 제4항입니다.

AI기본법 제16조

④ 제3항에 따른 인공지능제품 또는 인공지능서비스의 구매 또는 사용으로 국가기관등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그 구매 또는 사용 업무를 담당한 자는 해당 기관의 손해에 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없다. 다만, 해당 업무 담당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AI 제품·서비스를 구매·사용했다가 기관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담당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공공조달의 심리적 장벽 — “신기술 샀다가 잘못되면 내 책임” — 을 법이 직접 걷어낸 셈입니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영업하는 AI 스타트업이라면 제안서와 미팅에서 이 두 조항(제16조 제3항·제4항)을 정확히 인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담당자의 결재 부담을 낮춰 주는 근거가 법률에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영업 환경의 변화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③ — ‘AI 제품·서비스 확인 제도’

그러면 어떤 제품이 우선구매 고려 대상이 될까요? 시행령이 그 범위를 정했습니다.

AI기본법 시행령 제15조(인공지능기술 도입ㆍ활용 지원 등)

④ 법 제16조제3항 본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인공지능제품 또는 인공지능서비스"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확인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말한다.

⑤ 제4항에 따른 확인의 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행정안전부장관과 협의하여 고시한다.

우선구매 고려의 혜택을 받으려면 우리 제품이 AI 제품·서비스라는 **과기정통부장관의 ‘확인’**을 받아야 하고, 확인 업무는 과기정통부가 지정하는 전담기관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시행령 제31조 제1항 제7호).

다만 이 글을 쓰는 2026년 7월 25일 현재, 확인의 기준·절차를 정할 과기정통부 고시는 아직 제정·공포되지 않았습니다(국가법령정보센터 행정규칙 기준). 즉 제도의 법령상 틀은 7월 21일부터 가동됐지만, 실제로 확인을 신청하는 창구와 요건은 고시가 나와야 확정됩니다. 과기정통부 발표와 보도에 따르면 확인은 한국인공지능진흥협회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기술적 검토를 거쳐 실제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서비스인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고, 확인을 받은 기업에는 다수공급자계약 참여 요건 완화, 적격심사 가점 등 조달상 우대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고시가 공포되는 대로 이 블로그에서 신청 요건과 절차를 후속 정리하겠습니다.

이번 시행분에는 그 밖에도 AI 이용비용 지원(법 제17조의2), 벤처투자모태조합을 활용한 AI 분야 창업 투자 지원(법 제18조 제3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자는 AI 스타트업 입장에서 모태펀드발 투자 자금이 AI 분야로 더 흐르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기회 뒤의 숙제 ① — 우리 제품이 ‘고영향 AI’인가

공공시장의 문이 열리는 만큼, 팔려는 제품이 AI기본법상 의무를 지키고 있는지가 먼저 점검되어야 합니다. 그 출발점이 ‘고영향 인공지능’ 해당 여부입니다. 이 의무들은 이번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올해 1월 22일부터 이미 시행 중입니다.

AI기본법 제2조(정의)

  1. “고영향 인공지능"이란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시스템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활용되는 것을 말한다. (각 목 생략)

법문이 딱딱하니 풀어 보겠습니다. 고영향 AI에 해당하려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법이 열거한 영역에서 쓰여야 합니다. 법 제2조 제4호 각 목이 열거한 영역을 일상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 에너지 공급, 먹는물 생산, 보건의료 체계, 의료기기·디지털의료기기, 원자력, 수사·체포를 위한 얼굴·지문 등 생체인식 분석, 채용·대출 심사처럼 개인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판단·평가, 교통수단·교통시설의 주요 작동, 공공서비스의 자격 확인·결정이나 비용 징수 같은 국가기관등의 의사결정, 유치원·초중고 학생 평가. 여기에 대통령령으로 추가될 수 있는 영역까지 총 11개 범주입니다.

둘째, 그 영역에서 사람의 생명·신체 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이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야 합니다. 열거 영역에 걸치기만 하면 자동으로 고영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실제로 그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함께 봅니다.

감을 잡기 위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사내 회의록을 요약해 주는 챗봇이나 쇼핑몰의 상품 추천 AI는 열거 영역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일반적으로 고영향 AI가 아닙니다. 반면 이력서를 점수화해 서류 탈락자를 걸러내는 채용 스크리닝 AI, 대출 승인 여부나 한도를 산출하는 신용평가 모델, 의료 영상에서 병변을 찾아 의사의 진단을 보조하는 AI라면 각각 채용 판단, 대출 심사, 보건의료·의료기기 영역에서 개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므로 고영향 AI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어디에 쓰이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 얼굴인식 기술이 사진첩 자동 분류에 쓰이면 일반 AI지만, 수사기관의 용의자 식별에 쓰이면 고영향 영역입니다.

한 가지 더 유의할 점은, 이 의무의 주체가 AI를 개발한 회사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AI기본법은 인공지능을 개발·제공하는 인공지능개발사업자와, 남이 만든 AI를 이용해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이용사업자를 모두 ‘인공지능사업자’로 묶어 의무를 지웁니다(법 제2조 제7호). 외부 AI 모델을 API로 붙여 채용 평가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모델을 만든 회사가 아니어도 의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고영향 AI에 해당하면 안전성·신뢰성 확보 조치, 이용자 고지 등 별도 의무(법 제33조·제34조)가 붙습니다. 우리 제품이 해당하는지 애매하다면 과기정통부장관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법 제33조 제1항). 처리기간 30일, 수수료는 없습니다(시행령 별지 서식). 특히 공공기관 납품을 준비한다면, 발주처가 먼저 물어볼 질문이기도 합니다.

기회 뒤의 숙제 ② — 그 밖에 점검할 것들

  • 생성형 AI 고지 의무: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 사실을 이용자에게 사전에 고지해야 합니다(법 제31조 제1항). 위반 시 과태료가 1차 500만 원, 2차 1,000만 원, 3차 이상 1,500만 원입니다(시행령 별표 2).
  • 과태료 감경: 참고로 중소기업·벤처기업·소상공인은 AI기본법상 과태료를 2분의 1 범위에서 감경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시행령 별표 2 일반기준).

AI 스타트업 실무 체크리스트

  1. ‘AI 제품·서비스 확인’ 취득을 준비하세요. 확인 기준·절차 고시는 아직 공포 전이니 고시 제정을 모니터링하고, 제품 개요·기능 설명 자료를 확인 신청이 가능한 형태로 미리 정리해 두면 제도 개시와 동시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2. B2G 제안서에 법 제16조 제3항(우선구매 고려)·제4항(담당자 면책)을 반영하세요. 발주 담당자의 의사결정 부담을 낮추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영업 포인트입니다.
  3. 고영향 AI 해당 여부를 스스로 검토하고, 애매하면 확인 요청 제도를 활용하세요. 해당한다면 제33조·제34조 의무 이행 체계를 갖춘 뒤에 공공시장에 나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4. 생성형 AI 기능이 있다면 고지·표시가 구현되어 있는지 확인하세요. 공공 납품 심사에서 기본 항목으로 확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5. 조달 등록 준비를 병행하세요. 확인 제도의 우대가 다수공급자계약·적격심사 쪽에서 예고되어 있는 만큼, 나라장터 등록 등 조달시장 진입의 기본기를 갖춰 두어야 혜택이 실효적입니다.

마치며

AI기본법은 흔히 ‘규제법’으로 소개되지만, 이번 7월 21일 시행분이 보여주듯 절반은 진흥법입니다. 정부가 조달이라는 가장 큰 지갑을 AI 쪽으로 여는 흐름에서, 준비된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차이는 확인서 한 장과 체크리스트 몇 줄에서 갈릴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에서 우리 회사가 어떤 의무를 지고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는 제품의 기능과 활용 영역에 따라 달라지므로, 개별 검토가 필요합니다.

본 글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법률 제21311호, 2026. 1. 20. 공포, 2026. 7. 21. 시행분) 및 같은 법 시행령(대통령령 제36506호, 2026. 7. 20. 공포, 2026. 7. 21. 시행) 원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용한 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 기준이며, ‘AI 제품·서비스 확인 제도’의 세부 기준·절차는 작성일(2026. 7. 25.) 현재 고시 제정 전으로, 고시 공포에 따라 내용이 확정·변경될 수 있습니다.